성장없이도 풍요로운, 카미야마의 우아한 감속
지방소멸이라는 화두가 다소 위협적으로 회자되는 무렵 소셜미디어의 피드에서 이미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초록이 풍성한 계곡의 바위에 두 사람이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 일을 하고 있는 풍경을 담고 있었다. 카미야마정에서의 원격근무 풍경이라고 했다.
인상깊었던 장면을 직접 접하게 된 것은 식경험디자이너 ,로컬베이커리의 오너셰프, 영양에 관련한 정책과 교육전문가, 농촌인구연구 기반의 농경제연구자, 그리고 여행을 기획하고 가이드를 도맡은 일본 현지의 식경험디자이너와 그녀의 가족까지 어른 일곱 아이 둘이 함께한 23년의 일본여행에서 였다.
마을을 찾는 중단기 방문객을 위한 숙소 ‘카미야마 위크(Kamiyama Week)’에서 하루를 묵고 강을 바라보며 반짝거리는 아침을 맞아 보니 이미지는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지역에 흔한 목재인 삼나무의 아름다움을 살려 지어진 숙소와 숙소에서 보이는 강변 풍경은 인상적이었고, 마을길을 따라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공유오피스, 지역식자재로 요리하는 마을식당 카마야, 지역고유의 식가공품과 빵을 파는 카마빵집 등이 있었다. 신축과 리노베이션 모두 마을의 풍경에 유난하지 않게 어우러져 있었는데, 추상적인 계획의 언어나 브랜딩 없이 로컬한 필요에 로컬한 재료와 인력이 세심하게 대응한 자연스러운 과정과 결과들로 읽혔다. 안팎의 계획이 평범한 시골 풍경을 세련되게 재구성하고 흥미롭고 궁금하게 만들었다. 여행을 기획했던 식경험디자이너 하루나가 소개하여 만난 카미야마 푸드허브프로젝트의 관계자들이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는 농장을 포함하여 마을 이곳저곳을 안내해주고 아름다운 풍경 뒤에 두터운 시간을 가진, 이야기와 고민들을 공유해 주었다. 그 이야기들이 아니었다면 숙소 카미야마 위크의 멋진 삼나무기둥을 쓰다듬던 기억만 남았을지도 모르겠다.
성장없는 ‘지역 활성화’
카미야마정(神山町)은 일본 도쿠시마현에 위치한 산간 농촌 지역으로, 1955년 약 2만 명의 인구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인구 감소가 진행 중이다. 2024년 기준, 인구는 4,800명에 못미치고, 고령화율은 50%를 초과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약 22%의 인구감소를 보여주고 있다. ’지역의 활성화’로 유명해진 마을이지만, 기대와는 달리 축소가 멈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 보면서, 지역활성화의 목표로 성장의 회복을 당연시해온 것에서 질문의 촛점을 전환하여 묻게 된다. 성장회복이 아니라면 지역 활성화의 지향점과 성과지표는 무엇인가. 카미야마의 풍경 뒤에 두텁게 연결된 사건과 장면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시작은 아트 인 레지던시
그 시작은 1990년대 예술을 매개로한 국제교류활동이다. 1998년에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발전하였다. 이 프로그램은 예술가들이 카미야마에 머물며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고, 이후 디자이너, 영상 작가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들이 카미야마에 정착하게 되었다. 2000년대에는 빈집을 개조하여 크리에이터 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이 카미야마에 지역 사회에 ‘살고 일하는 방식’으로 머물게 되었다. 비영리단체 그린밸리가 이 활동들을 지원하며 현재에도 지역의 공동체와 소위 ‘관계인구’로 카미야마와 연결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역의 자원을 활용, 분배,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워크 인 레지던시로의 진화
2010년 IT기업 Sansan의 CEO인 테라다 치카히로가 우연한 방문을 계기로 오래된 집을 고쳐 위성오피스 ‘Sansan 카미야마 랩’을 조성하였다. 2005년 조성된 초고속인터넷 기반시설이 이런 의사결정을 도왔다. 이후 Sansan 카미야마 랩이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워케이션(일과 휴식이 조화로운)의 업무환경조성을 원하는 다른 기업의 참여로 확대되었다. 비영리단체 그린밸리의 주도로 빈집을 고쳐 위성오피스를 조성하는 오피스 인 카미야마 프로젝트, 코워킹 공간의 조성 등으로 이어져 디자이너, 개발자, 창업자 등이 지역에 유입되고 머물게 되었다.
마을을 미래세대에 잇는 프로젝트_푸드 허브 프로젝트
2017년 시작된 카미야마 푸드허브 프로젝트는 지역의 농업과 먹거리 문화를 재생하고, 지속가능한 지역 순환 모델을 구축하기 위한 종합적 실험이다. 지역 내 고령화와 농업의 쇠퇴를 극복하고자, 공동재배팀을 구성하여 벼·밀·채소 등 계절별 작물을 생산하고 있다. 카미야마 푸드허브의 핵심 거점인 "카마야(KAMAYA)"는 레스토랑, 가공실, 직매장, 공유 주방이 결합된 복합공간으로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식문화 실험의 장이 된다. 매일의 메뉴에 지역 농산물이 사용된 비율인 산식율을 공지하고 아카이빙한다. 학교 급식에 로컬 식재료를 공급하고, 어린이 대상 먹거리 교육을 통해 지역 사회 전반의 식문화를 재구성하고 있다. 또한 소규모 생산자 간 유통을 연계하는 플랫폼을 구축하여 지역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지향하고 있다.
오모지 집합주택 프로젝트
지자체 카미야마정청이 주도해 학령기 아이들과 부모들을 위한 마을의 주민과 이주민을 위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임대용 목조 집합주택을 건축하는 프로젝트다. 2016년 부터 시작된 건축은 주재료인 목재의 수급부터 시공 인력의 수급을 마을 밖에 외주하지 않고 마을 내에서 충족할 수 있는 속도에 맞추어 1년에 2개동 씩 완공하고 임대를 진행하여 21년 전체 동의 건축을 완료하였다. 일인가구의 코리빙주거 2유닛과 가족을 위한 18유닛을 합한 20유닛으로 구성된 8동의 임대주택과 마을의 주민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체공간 ‘아유쿠이카와 커먼’ 까지 지어져 현재 공실없이 임대 중이다.
고등전문학교의 개교
2023년 4월, 한 학년 40명 정원, 5년제 전원기숙사제의 ‘카미야마 마루고토 고등전문학교(神山まるごと高専)’가 개교하였다. 15세 전후의 신입생을 맞는 이 학교는 기술,디자인,기업가 정신을 현장을 중심으로 교육해 지역 사회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교육과 지역 발전을 동시에 추구한다. 학생들은 지역 기업,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를 통해 실질적인 사회 문제 해결에 참여한다.
학교의 설립은 최초의 위성오피스를 조성했던 Sansan 대표 테라타 치카히로(현재 이사장)의 제안으로 시작되었고 학생들의 학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약 100억 엔 규모의 장학금 기금을 조성하였다. 이 기금은 기업과 개인의 기부를 통해 마련되었으며, 이를 운용하여 학생들에게 안정적인 장학금을 제공한다.
주요 기부 기업으로는 후지쯔(Fujitsu), 소프트뱅크(SoftBank), 세프테니 홀딩스(Septeni Holdings) 등이 있으며, 이들은 각각 10억 엔 규모의 기부를 통해 장학금 기금조성에 참여하였다 .
학교소개행사에 지역민의 1/3인 1500명정도가 오고 첫 해의 지원자가 400명이 넘어 지역 안팎의 관심을 모았다. 학생들은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마을 전체를 교실 삼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멘토와 선생님들과 실천적인 배움을 하게 될거라고 학교는 선언하고 있다. 학교 소개책자 속 카미야마의 마을 지도와 마을의 ‘선배’주민 소개는 학교가 단단히 지역의 현실과 현재에 뿌리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아한 감속
카미야마의 ‘활성화’에는 마스터플랜이 없다. 방문자와 이주민을 숫자로 내세우지 않고 목표로 두지도 않는다. 외부자원을 투입해야 가능한 속도와 규모를 지양하고 느리고 작은 지역내 ‘순환’을 지향한다.
마을에 없던 새로운 활동의 태동이 이벤트나 파일롯프로젝트의 형식으로 생기면 마을 내외의 참여자들과 에이전시들이 연결과 협력을 통해 발전시키되, 마을 내부에서의 인적물적자원의 순환을 중심에 두고 분화, 확장하여, 다시 새로운 기회가 생성되는 방식의 진화를 거듭해왔다.
활성화를 도모하는 프로젝트의 목표가 축소의 진행을 전복하고 성장을 회복하는 것인가? 카미야마의 답은 ‘아니다’이다. 카미야마의 답은 축소는 실패가 아니며, 그 과정이 중요하고 성장없이도 풍요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패러다임에서 ‘좋은 삶’에 대한 지표는 현재적이고 구체적이 된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가미야마정이 보여주는 '창조적 과소화(Creative Depopulation)’의 과정과 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