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과 도시가 만나는 '진짜 시장'– 치앙마이 징짜이 파머스 마켓(Jing Jai Farmer’s Market)
프롤로그
풍경은 특정한 장소에 깊숙히 얽힌 역사문화적인, 사회경제적 그리고 생태적인 맥락들이 관찰의 시점에 드러낸 작은 일부이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섣불리 우리의 경우에 대입하려고 하기 보다, 탈성장, 탈도시의 지도 위에 점점들을 올려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경로를 탐색해 보려한다.
지난 2년간 일본 도쿠시마현 가미야마마을, 영국 남서부 전환도시들, 태국 치앙마이, 호주 멜버른 근교 파머컬처의 근원지 등을 여행하면서 탈성장, 탈도시의 다양한 단면들을 보고 들었다. 일부러 찾아가기도하고 발견하기도 한 풍경들에 대한 현지에서의 그리고 돌아보면서의 생각들로 첫 챕터를 연다.
지난 해 12월 치앙마이를 방문했을 때, 치앙마이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친구가 꼭 가봐야 한다고 추천해주었던 곳이 치앙마이 북쪽의 농부시장 징짜이 파머스마켓이었다.
주말에 아침 6시30분 부터 오후 3시까지 열리는 장터에 8시 쯤 도착했을 때, 이미 사람들이 많았다. 정오쯤 되자 마치 축제처럼 사람들의 활기가 넘쳤다. 주말에만 열리는 파머스마켓과 야외 식음공간은 오픈마켓 형식으로 펼쳐지고, 까페, 수공예상점, 갤러리, 마트 등이 위치한 상설 건물들이 주변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근교까지 합친 도시권의 인구가 120만인 치앙마이에 농부가 직접 판매하는 유기농 및 무농약 채소와 과일, 그것을 가공한 음식을 비롯해 빈티지와 수공예마켓까지, 규모도 다양성도 큰 파머스 마켓이 매주 열린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징짜이 마켓의 배경
징짜이 마켓은 치앙마이 도심에서 북측 외곽에 위치한다. 외연을 보아서는 공공이나 공익재단이 운영하는 것일까 추측하기 쉬운데, 태국의 유통 대기업 Central Group이 조성해 운영하는 곳이다. 원래는 Central Group의 슈퍼마켓 체인이 있던 부지였으나, 2000년대 초반, 대형 쇼핑몰과 체인점들이 급증하면서 방문자가 줄어들어 침체기를 맞았다. 부지와 마켓의 재생을 모색하던 Central Group은 이를 단순한 소매 매장이 아닌 지속 가능한 유기농 농업과 지역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연결을 위한 문화적, 공동체적인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려는 비전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비전은 "진정성"을 강조한 이름인 Jing Jai (จริงใจ)로 이어졌다. "Jing Jai"는 태국어로 ‘진심’ 또는 ‘진정한’을 의미하며, 시장의 핵심 가치인 진실성과 지역 사회의 상호 존중을 담고 있다.
리노베이션과 새로운 형태의 시장으로의 전환
징짜이 마켓은 2012년에 농민 중심의 시장으로 문을 열었다. Central Group은 기존 슈퍼마켓 부지를 재개발하여 개방형 시장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주차장과 기존 건물들은 철거되었으며, 오픈 에어 마켓과 반영구적인 상점들이 들어섰다. 이 새로운 디자인은 자연 친화적 미학을 강조했으며,지역 커뮤니티와 관계를 중요시했다.주말에 열리는 징짜이 파머스 마켓은 유기농/무농약 농산물 시장으로, 농민이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통해 유통 단계에서 중간 상인을 제거했다. 이러한 접근은 소비자와 생산자 간의 신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 모델을 만들어냈다. 주요한 운용 원칙은 유기농 및 화학비료 없이 경작된 농산물을 판매하고, 농민교육과 직판을 통해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촉진하는 것, 그리고 소비자와 농민간 직접소통과 상호작용을 장려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징짜이 파머스마켓은 치앙마이의 도시 주민, 특히 젊은 가족과 친환경 소비자들을 주요 고객층으로 끌어들였다.농민들은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한 자체 생산물을 시장에 직접 판매하여 지속가능한 농업을 이어가고, 도시민들은 신선하고 건강한 농산물을 쉽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브랜드화: 라이프스타일 지향점으로서 자리매김
징짜이 마켓은 점차 문화적 핫스팟으로 자리 잡았다.지역민 뿐아니라 관광객에게 인기있는 방문지가 되었다. 센트럴 그룹은 시장의 브랜드를 강화하고, 시설을 업그레이드하여 방문객의 경험을 다각화했다. 주말에 열리는 파머스 마켓 외에도 상설 마트와 빈티지와 수공예 마켓, 지역 예술가 및 디자이너와의 협업예술 전시, 야외 공연, 로컬 식음 공간 등이 복합적으로 구성되며 로컬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징짜이 마켓은 단순히 농산물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문화의 허브로 성장했다. 다양한 문화적 행사와 예술적 활동이 주말마다 열린다.
'CSR'을 넘은 ‘CSV’ 의 구조적 실험
2018년을 기점으로 ‘징짜이 마켓’은 센트럴그룹의 프로젝트 Central Tham- Better together 과 연계되어 치앙마이의 파머스마켓에서 센트럴그룹의 유통망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어 농부와 도시의 소비자를 연결하는 도-농 상생의 농산물 직거래 플랫폼이 되었다. ‘징짜이 마켓’은 센트럴 그룹이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넘어 추진하는 'Central Tham’(센트럴탐)'이라는 CSV (Creating Shared Value) 전략의 중요한 부분이다. 단순한 기부나 이미지 마케팅이 아닌, 기업과 지역이 공존하는 경영모델을 지향한다. 2018년 치앙마이가 아닌 지역에 첫 농산물 직거래 점포를 낸 ‘징짜이 마켓’은 현재 태국 전역으로 확장된 32개소의 점포에서, 4000여개의 상품을 판매하며, 10,200 농가의 지속가능한 농업을 지원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지역성과 생태적 전환의 장소
COVID-19 팬데믹 동안 징짜이 마켓도 큰 도전에 직면했으나, 시장은 지속 가능한 지역 자립과 순환 경제를 촉진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환경 혁신, 제로 웨이스트 및 로컬 자원 활용을 강조하며 지속가능한 경제순환모델을 구현하는 시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징짜이 파머스마켓은 현재 도시 식품 시스템과 농촌 경제의 융합 모델, 지속 가능한 농업 실천과 유기농 제품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 장이자, 문화 관광을 위한 소프트파워 도구, 지역 기반의 커뮤니티 플랫폼, 소상공인 지원과 지역 비즈니스 활성화의 장이 되고 있다.
징짜이 파머스마켓의 핵심은 지속 가능성과 공동체성이다. 입점 셀러는 유기농 인증을 받은 농가 또는 지역 기반 생산자로 제한되며,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하고 퇴비화, 재활용, 바이오가스 시스템까지 시장 내부에 갖추고 있다. 이곳은 단지 장보는 장소가 아니라, 도시민이 윤리적 소비자이자 농촌의 생산농가와 함께 생태공동체의 일원으로 전환되는 교육의 공간이다.